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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좋다고 웃고 다녀⋯⋯.
1부
UID-DX3-001
코도 이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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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PERSONALITY
방어적편집적예민함불안정거부
COVER
도둑
WORKS
도둑
붉은 화염 속에 발을 딛고 서 있던 것을 떠올린다. 주변의 비명은 고저와 음색마저도 기억할 수 있지만 그 음성의 주인만큼은 알 수 없었다. 이윽고 누군가가 제 '이름'을 외치는 듯한 고성이 울린다. 먼 곳의 불길을 등진 그림자가 이 쪽이라는 듯 손을 흔들어 온다. 살고 싶어, 살아야 해. 그 따위의 본능만이 몸을 이끌어 나가나 무엇인가에 묶인 듯 발을 딛을 수 없었다. 아니, 나는 살아남을 수 없다. 늘 마음을 앞질러 가는 사고가 스스로에게 선고를 내린다. ■■을 손에 붙든 채였다.
입이 벙긋거린다. 무엇이라 말을 토해낸 것이 무색하게 그 부분의 기억만큼은 가위로 잘라내기라도 한 듯 말끔한 무음으로 남았다. 끌어안았던 것의 온도도, 크기도 인간이 아닌 무언가를 안은 듯 모호했다. 쥘 수 있는 연기처럼 남은 그것은 힘겹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숨을 쉬는 것이 불편한 사람인가? 단순히 열기에 속이 익어버린 것일지도 몰랐다. 애초 그것이 불길이 스며들었다 빠져나가는 것인지, '숨'을 쉬는 것인지를 분간하는 것조차 어려웠다.
입이 다시 한 번 벙긋거린다. 목이 바싹 타들어간다. 한 마디 한 마디가 남은 숨을 태우고 있음을 알면서도 무언가를 중얼거리기를 몇 번, 이윽고 물 먹은 시선이 바닥을 향한다. 점멸하는 시야 앞으로 알아볼 수 없도록 검게 덧칠된 것이 발치를 구른다. 바닥을 기는 불꽃들이 천천히 자신을 향해 다가오면 그리 바라보는 것마저를 멈추게 된다. 아, 살 수 없어. 하지만…….
코도 이레이
- —꿈은 늘상 그 시점에서 마침표를 찍는다.
모호한 곳에서 단절되는 회상은 배터리가 부족해 늘어지는 소리를 내는 알람과 오버랩된다. 그 일로부터 벌써 3년인가-불에 탄 듯 너덜거리는 기억에 식은땀을 흘리며 눈을 뜨는 일상도 꼭 그 즈음이 반복되고 있다는 의미였다. 뒷목을 벅벅 긁어대며 소파 아래의 바지를 걷어찬다. 그러니까, 아버지. 제발 옷 좀 제대로 빨래통에 넣어 주시면 안 돼요? 그 따위의 핀잔과 오 분만 더, 라고 중얼거리는 쉰 목소리의 화답. 오래된 감자칩 같은 냄새가 나는 일상이었다. - 지극히 현재를 살아가는 인물. 앞을 내다보기에는 당장의 땅이 무너져내릴 것 같고, 뒤를 돌아보기에는 그 컴컴한 통로 끄트머리에 무엇이 있는지조차 보이지 않는다. 결국 믿을 수 있는 것은 제가 딛고 있는 땅과 제 몸, 제 손을 잡고 있는 이 뿐-그것 속에서만 자신을 찾는다. 때문에 무언가 중요한 것을 잊어버리고 있다는 자각이 있음에도 그것을 따라가려는 노력은 하지 않는다. 안주할 수 있는 지금이 있음에 감사할 따름이다.
- 소시민. 자신과 큰 연관을 지니지 않는 일에는 시선조차 두지 않으며, 아주 희미한 죄책감 따위는 없는 척 지나갈 수 있다. 사소한 악행에 악몽을 꾸는 일 따위 없다. 어린 것이 벌써부터 뻔뻔스럽다는 말을 듣거든 묵묵히 고개를 돌릴 뿐이다. '정의'와 '선'은 노력해도 닿을 수 없는 이상의 단어처럼 느껴져 그것을 향해 손을 뻗는 것은 진즉 포기했다. 차라리 우물 아래의 눅눅한 자리가 마음이 편했다. 발버둥을 치지 않으니 숨이 차오르는 일도 없었다. 발 아래에서 자신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으나 언젠가는 단단한 땅을 딛을 수 있으려니, 완전한 바닥으로 침잠하지는 않겠거니. 그 즈음이 되면 살고 싶다는 지극히 인간적인 본능에 의해 기적적으로 완전한 '악'이 되지 않을 수 있을 것도 같았다.
- 코도 카이치와 만난 것은 3년 전. 그 이전의 기억은 존재하지 않거나 까마득하다. 종종 자신의 것이 아닌 것만 같은 기억들이 눈 앞에서 번쩍거리나, 그것에 오래 신경을 기울이고 있을 여유는 없다. 잠시 정신을 놓았다 돌아오면 현재, 또 어느 골목에서 진탕 술에 취한 채 헛소리를 나불거리고 있는 제 '아버지'의 향방을 찾기에 급급하다. 이 사람은 도대체 내가 없으면 어떻게 살려고 이러는 거지! 오버드는 오버드이니 어디서 비명횡사를 하지는 않겠다만, 그것보다 더한 꼴이 되어서 나타날 것 같다는 생각에 닿으면 분에 찬 한숨이 절로 튀어나오곤 했다. 실로, 도대체 어디서부터 꼬인 것인지 감도 잡히지 않는 인생이다…….
- 어쩌면 첫 만남이 문제인가. 이 이상하게 변해버린 몸은 몇 번이고 배를 꿰뚫리고도 죽음을 허용받지 못한 것처럼 굴었고, 정신은 마음을 거스르듯 움찔대며 다시 일어나 달릴 것을 종용했다. 스스로마저 자신의 의지에 반하며 움직인다. 아, 차라리 이 꼴이라면 죽어버리는 편이 낫겠는데! 그 따위의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면 또 하나의 목소리가 끼어든다. 지금 죽으면 성한 꼴로 못 죽을 게 뻔할걸, 너도 저것처럼 변하고 싶은 건 아닐 것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괴물 따위는 되고 싶지 않아, 그래, 살고 싶어. 그래. 그렇다면 일어나서 달려! 불꽃이 되도록 달리라고! 들숨, 몸이 쏟아지듯 앞으로 기울여졌다. 그 발버둥이 무색하게 다시 한 번의 암전이 찾아왔다. 머릿속의 음성의 말대로 불꽃이 되도록 달렸던 것인지, 불길이 옮겨붙어 시퍼렇게 이글대는 주변이 눈물로 번진 시야 밖으로 번들거렸다. 추워서 죽어버리겠군. 멍청한 녀석, 살고 싶다며? 그래, 살고 싶다니까……. 그런 녀석이 발톱에 직접 달려든다고? 눈에 뵈는 게 없구나! 시끄러워. 힘이 풀린 손으로 머리를 콱, 몇 번 즈음 때리고 있자면 낯선 음성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이야, 한바탕 시원하게 놀았구만! 내가 너무 늦었나……."
번개처럼 내리꽂히는 호방한 목소리였다. 이어, 당시의 자신으로써는 영 이해할 수 없을 '힘'이 눈 앞에서 번득였고, 차마 입 밖으로는 내어 묘사할 수 없는 '청소년 관람 불가' 수준의 유혈사태-나는 그것의 절반 즈음이 나의 뇌에 의해 자체적으로 '검열'되었다고 여긴다-가 눈 앞에 펼쳐졌다. 턱, 몸이 괴물이 아닌 것에 의해 들리는 중력에 대한 역행. 아이를 달래는 것이라 하기에는 지나칠 정도로 껄렁거리는 어투가 이명 속에서 웅얼댔는데, 여전히 그 내용만큼은 명확히 알 수가 없다. 확실하게 기억하는 것은 빵을 연상시키는 술 냄새, 이질적인 녹빛의 색깔, 그리고, 충격! 매트리스 위에 내동댕이 쳐지듯 구르던 나의 몸이다. "어휴, 뭔 놈의 애가 이렇게 비실비실해?"
나는 짐짝이 가볍다는 이유로 불평을 내뱉을 수 있는 류의 인간이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그 날 처음으로 학습했다. - 그에 대해 처음으로 느낀 것은 당연히도 감사였다. "살려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더 이상 폐를 끼칠 수는 없으니 돌아가 볼게요." 그 말에 대해서는 비웃음이 돌아왔다. "에헤이, 빈손으로 감사 인사를? 아무것도 안 줄 거면서 감사하다는 말로만 퉁치려 하면 안 될텐데." "아시다시피 단신에 맨몸이라 가진 것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아하, 그런 문제란 말이지. 그러엄……. 가서 설거지나 좀 해 둬라. 아빠는 출근이나 하려니까."
당황스럽다. 초면인데도 대뜸 스스로를 '아빠'라 부르더니, 몸 성하지 않은 아이에게 냉큼 노동력을 요구한다. 허나 그 상대가 제 생명의 은인이었음은 확실하기에, 마지막 감사마저 황당함에 가려 사라지기 전 서둘러 몸을 일으켜야 했다. 어서 해치우고 나가버리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도망쳐서, 어떻게든 혼자 먹고 살아 보는 거야. 그 따위의 생각을 하고 있자니, 영 망신창이가 된 꼴의 너덜거리는 은인께서는 친히 이마를 꾸욱 눌러 주시며 이불에 나를 밀어 넣는 것이었다. 역시 당황스럽다. 설거지를 하라 했으면서 도로 침대에 넣어두는 건 도대체 무슨 심보인데! "급하게 일어나면 3분도 안 되어서 도로 쓰러질걸. 적어도 2시간 정도는 있다가 일어나라, 꼬맹이. 진짜 간다!" '차오!' 이상한 억양의 인사와 함께 멀지 않은 곳의 현관이 탁, 닫혔다. 발걸음 소리가 점차 멀어져 간다. 그 소리가 잦아들자마자 다시 몸을 일으켰다. 호기롭게 몸을 일으키고 눈을 깜박였는데, 다시 눈을 뜨니 침대 위였다. 시간은 어느샌가 오후 세 시를 가르키고 있었다. 분명 눈을 감기 전까지는 새벽 여섯 시였단 말이다…….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하나는 내 몸 하나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이 상황에 대한 것이었고, 또 하나는 하필이면 이런 이상한 인간의 손에 붙잡혀 목숨을 건졌다는 사실에 대한 것이었으며, 마지막 하나는……. 그럼에도 감사는 확실히 표해야 한다는 이 심정이 여전하다는 어처구니 없는 마음에 의한 것이었다. 희미한 오한에 몸서리치며 고무장갑을 꼈을 때, 타이밍 좋게 열쇠 꽂히는 소리가 났다. 철컥, 아직 설거지는 시작도 못 했는데, 끼익, 보통 '출근'을 한 사람이 이렇게 빨리 돌아오나, 탁. "아빠 왔다!" 누가 당신더러 아빠래. 신경질적으로 수전을 틀었다. 시원하게 쏟아져 나오는 물을 기대했다만, 졸졸거리는 물소리는 '물소리 때문에 못 들었어요'라는 핑계를 대기에도 민망할 정도였다. "하하, 따뜻한 물을 틀려고 하니까 그렇지." 넉살 좋은 음성이 수도꼭지를 오른쪽으로 휙, 돌리자 곧장 차가운 물이 콸콸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냥 들어가서 쉬어. 안색을 보니 딱 봐도 말 안 듣고 일어났다가 쓰러진 사람 꼴이구만." '아, 이번에 쓰러지면 안 잡아 줄 거다, 꼬마 도련님. 어서 침대의 품에 안겨 있으라고.' 성의 없이 손을 휘적거리는 꼴이 슬슬 짜증났다. 순순히 방으로 돌아간 것은 순전히 바닥에 머리를 박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 저녁 식사를 하고-끔찍할 정도로 맛없는 잡탕이었지만, 이 멍청한 입은 그것도 영양소라고 퍽 게걸스럽게 그것을 먹어치웠다-가벼이 몸을 씻었다. "저녁 설거지는 네가 해라?" 라는 말에 드디어 해방이라는 생각을 하기도 잠시, "아아니. 역시 쉬어라." 라는 번복이 돌아왔다.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는 류의 인간이었다. 그러니 그 좁은 집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된 것은 결코 나의 의도가 아니었다. 소파에 몸을 구겨넣은 채 코를 고는 인간의 뒷모습이 영 초라해 보여 차라리 자신이 소파에서 자겠다고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으나, 그것에 대해 능청스러운 대꾸를 할 것을 생각하자면 역시 얌전히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이 나을 것도 같았다. 낯선 공간에서 잠을 청하려 애를 썼다. 묘하게 늘어져 있는 초침 소리가 불쾌했다. 공기에서 미미하게 느껴지는 오래된 빵 냄새도, 등 뒤에 닿는 매트리스의 스프링도 편치 못했다. 결국 그렇게 꼬박 밤을 지새웠다.
- 정신을 차려 보니 어느새 열흘 가량의 시간이 지나 있었다. 몸은 드디어 설거지를 할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되었고, 강경한 주장으로 그 '잡탕'에서 오래된 계란을 빼내는 데에도 성공했다……. 잠깐, 그 짧은 시간만에 몸과 정신이 이 생활에 적응하고 있었다. '어쩌면 이대로도 괜찮을지 모른다'는 안일한 생각을 자각하니 머리가 지끈거렸다. 언제까지고 이 곳에서 안주할 수는 없다. 남의 집이 아닌가. 허나 이 바깥으로 나가거든 돌아갈 곳이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떠돌아다니는 것은 사절이다. 그렇다 하여 또 그 끔찍한 '괴물들'에게 배를 꿰뚫리는 것은 더욱이나 사절이다! 밥상머리에서 영 멍한 표정을 하고 있었는지, 정수리에 약한 충격이 가해졌다. "인마, 밥상머리에서 죽상 하기는……. 그렇게 나가고 싶냐? 누가 보면 내가 너를 강제로 데려와서 가두고 있는 줄 알겠군." 틀린 말은 아니다. "생각해 보니 아주 틀린 말은 아니구만?" 알고 있구나. 한숨을 푹 내쉬었다. 마른 세수를 하고 있자면, 눈을 끔벅거리던 그 인간은 냉큼 내 그릇을 제 쪽으로 끌고 가더니 그 속의 다진 고기를 젓가락으로 쏙쏙 빼먹기 시작했다. 그래, 그러세요. "내일 보내 줄게. 거, 부모님도 걱정하실테고. 연락은 좀 했어? 찾아온 사람은 없었고?" 퍽이나 빨리도 물어본다-아니, 그것보다도……. "……. 저, 보육원 출신인데요." "그럼 더 돌아가야겠구만. 이거, 미안하게 됐어. 다 널 생각해서 그랬던 거니까 좀 봐 주라, 응?" "저, 그게." "엉." "그게 싹 다 불에 타서 사라졌거든요. 그래서, 실은, 돌아갈 곳이……." '없습니다.' 마지막 한 단어를 내뱉어 문장을 완성해야 했다. 분명 무엇인가를 말한 것도 같은데, 이유를 알 수 없는 설움과 비관이 북받쳐 올라 목을 틀어막았다.
다른 인간의 앞에서 눈물을 보이는 것은 싫다. 어린 애처럼 보이니까. 콧물을 보이는 것은 더욱이나 싫다. 더럽고 흉하니까. 허나, 두려움을 보이는 것이 가장 싫었다. 약점을 들키는 꼴이지 않은가. 그 셋이 동시에 질질 흘렀다. 이름도 모르는, 저 한량같은 인간의 앞에서 바닥을 보이고 있는 꼴이었다. 절로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돌아갈 집이 없다는 자각에 닿자 이제는 희미하게 우는 소리까지 새기 시작했다. 차라리 기절을 하는 것이 낫겠다 싶어 두 손에 고개를 묻은 채로 숨을 참았다. 그 이후에 대해서는……. 상상들 하시라. - 그리하여 얹혀 살게 되었다. 어느샌가 그 비위에 맞추어 상대를 '아버지'라 부르는 일이 자연스러워졌고, 그의 '아들'로 소개되는 일 역시 익숙해졌다. 그가 불법적인 일에 손을 대며 생을 영위하고 있다는 사실은 영 꺼림칙했지만, 그렇게라도 돈을 벌지 않으면 생계를 이어나갈 수 없어 적극적으로 그것을 방관했다. 그 역시 제 '아들'의 손을 더럽히는 것은 싫었는지 '길드'에서의 일 중 사소한 것들만을 제 손에 쥐어주며 '밥값은 하라'는 장난스러운 타박을 남길 뿐이었다. 남의 주머니를 털어오거나 금고를 따 돈을 슬쩍하는 것에 대한 죄책감은 처음에나 끔찍했지, 이제는 숨을 쉬는 것만큼이나 어렵지 않은 일이 된 것이 오래이다. 나는 이미 무언가의 선을 넘었다. 그리 단념하면 그 인간과 비슷한 표정을 짓는 것도 아주 어렵지 않게 느껴졌다.
이 생활에서 불만스러운 것을 꼽으라면-그래, 솔직해지자면 수도 없이 많은 것이 불만스럽다. 그러니 말을 고쳐 보자. 이 생활에서 가장 불만스러운 것을 꼽으라면 두 가지 즈음이 있다. 하나, 제 아버지라는 작자는 제게 깃들어 있는 이상한 힘과 그것을 다루는 법을 아주 잘 알고 있는 듯 굴면서도, 첫 몇 번의 '훈련' 이후로는 그 힘을 사용하지 않는 편이 낫겠다며 나를 단념시켰다. 그 즈음에는 반항심보다도 '도움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더욱 커졌던지라, 자연스레 욱하는 마음이 들어 괜히 투정을 부렸다. 언제는 나도 할 수 있을 것이라 하더니! 그리고, 둘. 그 말과는 달리 어느 순간부터 길드의 인간들은 자신을 '엔'이라 호명하며, '앱솔루트 제로'라는 이명을 붙이고 저들끼리만 알아들을 수 있는 말들을 쑥덕거렸다. 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세상이 돌아가는 감각은 질색이다. 그것이 자신에 대한 일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그에 대한 질문을 아버지에게 던져 보아도 돌아오는 답은 "모르는 게 약일 때도 있거든?" 이라는 성의 없는 대답과 난처해 보이는 웃음이 고작이어서, 이제는 묻는 것 자체를 포기했다. "네, 네. 제가 엔이고요. 네, '앱솔루트 제로'도 맞아요." 이제는 이 즈음의 대꾸로 응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난 아무것도 안 했는데……. 아마도.
아무렴, 그리 이도저도 아닌 생활이 강제적으로 이어지고 있던 것이 오늘날까지의 일상이었다. 누군가는 이 따위의 것을 일상이라 부를 수는 없다 이야기하겠으나, 애석하게도 어딘가에는 이토록 묘한 인생을 일상이라 불러야 할 정도로 제 삶에 대한 기대치가 바닥을 향하는 인간도 존재하는 법이다. 아버지를 유치장에서 빼 오고, 쑥덕거리는 소문을 등지고 살아가며, 늘상 암호를 맞추기 위해 머리를 굴려야 하는 것도 누군가에게는 소중하기 그지없는 삶의 꼴이다. 더 나아질 것을 바라지는 않았으니, 세상 역시 더 나빠지지 않는 삶으로 그 검소함에 보답해 주기를 바랐다. 그리고 이러한 류의 이야기가 늘상 그러하듯……. 세상은 개인의 기대에 응하지 않는다.
코도 이레이의 이야기는 이 균열으로부터 시작된다.
DX3 / DX3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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